우리는 기업 특허 순위를 매기지 않습니다 — 지표를 바꾸면 순위가 바뀌기 때문에
특허 데이터로 기업을 줄 세우는 일은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어떤 지표를 고르느냐로 결과가 뒤집힙니다. 그 편향이 어디서 오는지 밝히고, 대신 무엇을 제시할지 적습니다.
특허 데이터로 "A사가 B사보다 기술력이 높다"는 결론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지표를 고르고, 계산하고, 산점도에 점을 찍고, 대각선을 그어 위쪽을 1위 그룹이라고 부르면 됩니다. 실제로 그런 차트가 많이 유통됩니다.
우리는 그걸 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 결과가 지표 선택에 따라 뒤집히기 때문입니다.
지표를 고르는 순간 답이 정해진다
특허 품질을 나타낸다고 알려진 지표들은 각자 다른 편향을 갖고 있습니다. 몇 개만 보겠습니다.
피인용 기반 지표(CPP 등)는 미국 기업에 유리합니다. USPTO 는 인용이 많이 달리는 관행이 있고, EPO·JPO·KIPO·CNIPA 는 심사관 인용의 성격이 다릅니다. 미국 특허 기준으로 피인용을 세면 미국 기업이 자동으로 위로 올라갑니다.
출원 건수 기반 지표는 중국 기업에 유리합니다. 전 세계 출원량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커서, 양적 지표를 쓰면 중국 기업이 상위를 채웁니다.
패밀리 규모(PFS)는 돈이 많은 기업에 유리합니다. 해외출원은 국가당 1천만 원 안팎이 듭니다. 국내출원은 200~300만 원입니다. 패밀리 국가 수를 늘리려면 국내출원 다섯 건을 포기하고 해외출원 한 건을 해야 합니다. 패밀리가 큰 기업은 기술이 좋은 기업이 아니라 IP 예산이 큰 기업일 수 있습니다. 소부장 중소기업을 대기업과 이 지표로 비교하면 구조적으로 불공정합니다.
피인용은 시간이 지나야 쌓입니다. 출원에서 등록까지 평균 3년이 걸리고, 인용은 그 뒤에 붙기 시작합니다. 최근에 좋은 특허를 낸 기업일수록 낮게 나옵니다.
소수의 특허가 평균을 지배합니다. 극소수의 슈퍼 특허 하나가 평균 피인용을 끌어올려, 전반적인 기술력이 높지 않아도 CPP 가 높게 나올 수 있습니다.
이 목록을 알고 나면 결론은 하나입니다. 어떤 기업을 위로 올리고 싶은지 먼저 정한 다음 그에 맞는 지표를 고르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순위표는 사실처럼 보이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그리고 순위표를 받아보는 사람은 어떤 지표가 쓰였는지 대개 확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제시하는가
우리는 "누가 더 우수한가"를 말하지 않고, "무엇이 얼마나 있는가"만 말합니다. 이 둘의 경계는 생각보다 선명합니다.
| 제시하는 것 | 제시하지 않는 것 |
|---|---|
| 세부기술별 연도별 출원 건수 추이 | 기업별 기술력 점수·등급 |
| 세부기술별 출원 증가율 | 기업 순위표, 1위 그룹 / 2위 그룹 |
| 출원인별 IPC 분포 (어느 자리에 있는가) | 출원인별 건수 랭킹 (누가 몇 등인가) |
| 공동출원 관계 (누가 누구와 함께 출원했는가) | 기업 간 우열·격차 서술 |
| 출원인 유형 분포 (기업·대학·연구소) | 생태계가 "취약하다"는 평가 |
| 기술발전 단계 (출원량 × 출원인 수) | 특정 기업의 전망 |
출원인별 IPC 분포를 다룰 때도 조심할 게 있습니다. "출원인별"이라는 축을 넣는 순간 독자는 자동으로 순위를 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건수 내림차순으로 정렬하지 않습니다. 정렬을 바꾸면 같은 데이터가 "누가 1등인가"에서 "누가 어디에 있는가"로 읽힙니다. 우리가 보여주려는 것은 후자입니다.
데이터에 붙는 주석들
사실만 제시한다고 해도, 그 사실이 왜곡될 수 있는 지점은 표시해야 합니다. 우리가 내는 데이터 파생 콘텐츠에는 다음이 따라붙습니다.
- 최근 1~2년 구간은 항상 과소집계됩니다. 출원 후 18개월이 지나야 공개되기 때문입니다. "2025년 출원이 급감했다"는 해석은 거의 항상 틀립니다.
- 집계 기준을 명시합니다. 원출원일 기준인지, 출원인 계열사를 분리했는지 합쳤는지, 특허 패밀리를 국가 단위로 1건으로 셌는지.
- 출처는 KIPRIS 공개 데이터입니다. 우리가 만든 값이 아니라 조회 가능한 값입니다.
왜 굳이 이 글을 쓰는가
순위를 안 매기는 것은 우리에게 불리합니다. 순위표는 잘 읽히고, 잘 공유되고, 사람들이 원합니다. 그걸 포기하는 대신 우리는 어떤 사실을 어떤 조건에서 뽑았는지를 매번 적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가 파는 것은 결론이 아니라 판단의 재료입니다. 재료가 조작 가능하다는 걸 알면서 조작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보다, 조작이 어떻게 가능한지 먼저 공개하는 편이 낫습니다.
같은 이유로 우리 제품의 성능도 유리한 숫자와 불리한 숫자를 같이 적습니다 — 측정 공개 글에 적어두었습니다.